눈
Monday, December 9th, 2002일찍 일어나려고 했건만 결국 늦게 일어났다
바둥 바둥 화장실에 가서 뜨거운 샤워 줄기에 잠을 씻어본다
거품을 내어 면도기로 턱을 문지르고 코밑의 수염을 베고 있을때 미끄러진 면도기에 입술을 베었다
최근엔 이런일이 없었는데…
피방울이 입술에 번진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항상 면도하다 베는 건 불길한 징조다
세면대에 떨어지는 피방울만큼이나…
이런 날은 항상 주의 했지만 현실에선 오히려 좋은 일만 많았었다
찬물로 씻어내고 휴지로 닦아도 베어진 입술의 피는 쉽사리 멈추지 않는다
비릿한 피가 입 안으로 들어와 어지럽다
물기를 닦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결국 늦었다…
사실 내가 안 늦는게 더 이상하다
어쨌든 일산은 졸라 멀어서 책을 많이 읽었다
수린이와 정인이가 승범이와 맥도날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린이가 빅맥을 시켜 주었다
기정이도 왔다…속이 안좋다며 화장실부터 간다
동네 짱께집도 아니구 패스트 푸드가 한참을 기다려도 안나온다
필기한테 전화도 왔다
필기는 벌써 도착했댄다
나는 필기가 뺐어 먹을까봐 수린이한테 필기 밥 먹었는지 물어보라 했건만 안 받는다구 한다
불길하긴 했지만 빅맥을 싸들고 택시를 탔다
슈퍼에서 작업간에 먹을 과자와 음료수 그리고 목장갑과 쓰레기 봉투를 샀다
배정인은 별루 안 먹구 싶다면서 닭다리와 오징어땅콩과 꼬깔콘을 골랐다…안 먹구 싶은데 그정도면 먹고싶을땐 과자를 얼마나 먹는 걸까–;
작업장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장농이 없었다
하지만 쓰레기는 거의 황필기 정자수만큼 많았다
일단 빅맥을 먹었는데 황필기가 프렌치 후라이는 다 먹었다
홍기정은 갑자기 먹고싶다면서 거의 다 먹어가는 빅맥을 가져갔다
암튼 담배 한대 피우고 일을 시작했다
승범이는 얼굴도 잘생긴게 일도 잘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야한 잡지가 한박스나 있었는데 승범이가 가져가기루 해서 그건 안 버렸다
그 집은 참 이상한 집이다
집에 없는 게 없다
농약…톱…낫…호미…본드…등등
서랍마다 꽉 차있다
그리고 스프링 달린 신발이 있어서 기정이 발에 청테잎으로 붙여 줬다
중간에 배정인은 이상한 주문을 외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주문인데 무슨 주문인지 까먹었다구 한다–;
중간에 과자를 먹을때도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기정이가 젤 좋아했다
정인이가 말만 하면 기정이는 뒤집어 졌다
특히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경주에 있다는 ‘슈만과 클라라’였다
어쨌거나 그곳을 다 치웠다
예전에 부대에 있을때 무너진 가건물 쓰레기 더미 치운 이래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새거 냄비와 팬을 챙겼다
엄마를 갖다 드렸는데 엄마가 좋아하셔서 기분이 좋다^^
무거운거 들고 온 보람이 있다
기정이는 맥주 500잔 두개를 손에 들고 집에 갔다
어쨌든 일을 마치고 기차길에 갔다
사람이 너무 많은게 흠이었지만 수린이가 갈비살 13인분과 뚝배기 3개와 소주 2개를 시켜 줘서 간만에 아주 포식했다
승범이는 얼굴도 잘생긴게 술도 잘먹구 고기도 잘 먹는다
그리구 필기가 좋아하는 폴리스가서 병맥주 좀 먹다가 졸려서 집에 왔다
사실 간만에 작업 할라구 하니 피곤하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역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면 재밌다
부대에서도 금걸 김주성과 작업하는게 제일 나았다
작업도 잘하고 내가 키우는 놈들이라 맘도 잘맞아서…
암튼 재밌었는데 피곤한지 글로는 잘 못쓰겠다…원래 논거 글쓰는 게 취미인데
눈이 쌓인다…
바닥에 닿으면 수줍은듯 녹아버리지만 발길이 닿지않는 지붕에는 고고하게 쌓여있다
오랜만에 보는 굵은 눈줄기가 뿌옇게 흩날리고 푸른 가로등 밑에선 더욱 또렸하게 보인다
이제 어쩔수 없는 겨울이다
항상 이맘때면 찾아오던 마음의 겨울은 늦다…
아니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겨울이었던 한해였고 내 마음을 차갑게 식혀가던 서리들은 한여름에도 그칠 줄을 몰랐지만 오히려 겨울이 다가오면서 얼음 밑의 뜨거운 물줄기에 녹아내렸다
하지만 마음을 닫아 두었던 시간만큼이나 아직도 누군가와 이야기하는게 어색하고 서툴다
그래도 차갑던 가슴에 다시도는 핏줄기처럼 이젠 춥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