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2003

미팅~

Saturday, September 27th, 2003

성웅이가 술먹고 술병나서 빵꾸내는 바람에 대타로 미팅에 나갔다
우리측은 나 고진 병태 재한이었다
여자쪽은 GS후배인 인선이 사촌동생 및 사촌동생의 친구들이었다
사실 미팅엔 별 기대 안한다
그냥 하루 재밌게 놀자고 하는거란 생각이니깐
암튼 얼마만의 미팅인지 모르겠다
사실 미팅 몇번 하지두 않았지만….
강남에서 만나는데 역시나 나는 지각했다
근데 여자애들이 나오기 1분전에 도착해서 친구들이 나 화장실 갔다고 했단다
암튼 그래서 결국 안 지각이 되고…
지하에 있는 주막에 술 마시러 갔다
여자애들은 별로였다…아니 길에는 이렇게 예쁜애들 투성인데 왜 그런걸까 잠깐 의문을 가졌지만 별 기대 안했으니 딱히 실망할 것도 없었다
대진대 시디과 4학년 들이다…재수한 애도 있어서 79 80 들이다
암튼 거진 동갑이다
특이한건 동동주에 사이다를 타서 먹는다는 거다
뭐 맛없진 않더만…나야 원래 탁주류는 잘 못먹지만…
암튼 게임도 하고 이러면서 놀다가–; 자리를 옮겼다
술병 나은 성웅이도 왔다
2층의 모 술집에서 게임을 하는데 이미지 게임 벌칙으로 진실게임이 되었다
거기서 고진이 마음에 있는 애를 밝힘으로써 순식간에 진도가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천생연분 장미의 선택 분위기로 만들어서 마지막에 포크의 선택 이벤트를 하게 되었다
지금 눈치상 고진이 한명을 골랐고 나머지는 다들 마음이 없다
첫빠따로 내가 걸려서 옆에 앉아있던 인선이 사촌한테 포크를 넘겼다
인선이 사촌이 나에게 다시 포크를 줘서 첫커플이 탄생했다
기념촬영 후 다음 사람이 또 하고 했는데 역시 내 친구들은 방송을 안다
그래서 여자애들 모두에게 포크가 돌아가게 했고 결국 네커플이 탄생했다
나중에 온 성웅이가 마지막 선택이었는데 이미 네커플은 탄생된 상태에서 포크를 인선이 사촌에게 주었다
인선이 사촌은 새로운 선택의 순간이 되었다 기존의 커플인 나를 선택하느냐 새롭게 성웅을 선택하느냐…
여기서 음악과 함께 자막이 올라갔다 ‘다음주를 기대하세요’
그렇게 미팅은 막을 내렸다
초반엔 분위기 별로였고 재미도 없었는데 다행히도 나중엔 좀 재밌었다
암튼 오랜만의 미팅이었고 동그랑땡 애들과는 첫 미팅이었다
다음 회엔 여자 출연자 바꿔서 커플운동회도 하자고 다짐하며 집에 왔다
그때 그 여자애들 밥은 먹고 다니나…

연주의 공연

Sunday, September 21st, 2003

연주가 공연을 한다고 해서 중앙대 루이스홀에 갔다
영등포 청소년 문화제 인가 그런데 연주가 영등포 청소년회관이었나 암튼 거기서 가르치는 애들과 함께 나왔다
나는 집에서 빈둥대다 늦게 갔다
연주네 팀이 두번 나왔다는데 난 첫번째 나올때는 못보고 두번째 나온것만 봤다
가르치는 애들이 중학생인가 그래서 남자애들과 추는데도 확실히 연주의 파워와 기교가 돋보였다
연주가 가르쳐서 인지 애들도 중학생 치곤 상당히 잘 췄다
연주는 참 멋진 애다
공연이 끝나고서야 김만과 나영이가 도착했다
둘이 싸웠단다–;
연주는 바빠서 우리끼리 저녁을 먹으러 갔다
김만은 자꾸 툴툴된다–;
성웅이가 고기를 사줘서 먹는데 무슨말만 해도 김만과 나영이가 티격태격이다
김만이 나영이한테 ‘구리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니 여자친구한테 구리다라고 하다니 김만 니가 훨 구려
나와 성웅이는 김만을 혼냈다
김만 녀석 좀 독특한 구석은 있지만 착하고 순수한 녀석이다
얄팍한 짓만 안하면 좋으련만…ㅋㅋ
병태도 오구 해서 고기집을 나와 오락실에 갔다
김만과 나영은 타임 크라이시스를 하는데 얄팍한 김만은 자기꺼만 죽였다
내가 ‘아니 김만 나영이꺼 먼저 죽이고 니꺼 죽여야지 니꺼만 죽이니깐 나영이 자꾸 죽자나’ 라고 항의했다
그 와중에 병태가 포토제닉을 잡았다 두번째 사진이다
김만 나영 커플 사진중 내가 젤 좋아하는 사진이다
두번째로 좋아하는 사진은 100일잔치때의 씨빼기 사진이다^^
나영이 캐릭터가 죽을때 아쉬워하는 표정을 순간 포착했다
흡사 진짜 총을 맞은거 같다
옆에 김만은 신경도 안쓰고 자기꺼만 하고 있는 무심함도 잘 표현된 수작이다
오락실을 나와 어디 갈까 하다가 병태의 아이디어로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이동막걸리와 풀무원두부와 김치를 사서 중대 청룡탕으로 올라갔다
신문지 깔고 막걸리를 마셨다
두부와 김치를 사서 막걸리와 마시긴 첨이었지만 오랜만에 야외에서 먹는데다 좋은 사람들이랑 마시니 운치가 있었다

간만에 셋이서…

Tuesday, September 9th, 2003

덕기에게 전화가 왔다 두영이 나왔다고 한잔하자고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부랴부랴 범계로 갔다
오랜만에 셋이서 마셨다
동백섬 애들 누구는 중요하고 누구는 중요하지 않겠냐 만은
덕기와 두영이는 좀 다르다
아무래도 처음 동백섬에 발을 들여놓을때 함께 했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셋이 모일때면 여러명이 같이 모일때와는 다른 미묘함이 있다
난 항상 셋이란 숫자로 친구들과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영찬이 태연이와
중학교 1학년 때는 계형이 명준이 혹은 계형이 승범이와
고1때는 집에 같이 가는 권뽕 진석이 영화도 함께 보고 수업시간에 장난도 많이친 주후 칼발과
그러다 고2로 넘어갈때쯤 덕기 두영이 병수로 구성된 또다른 삼인조와 합쳐져서 여섯이 되었다
고3때는 재홍이 상기와
수능이 끝나고는 덕기 두영이와 동백섬에 눌러앉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정수 선생님이 주신 편지에 삼발이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써 주셨다 한쪽이 기울면 삼발이는 넘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은 나와 영찬이와 태연이 사이의 어긋남을 눈치채셨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찬이는 반장에다가 인기도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태연이도 나보다 영찬이를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태연이는 영찬이보다 날 좋아했다
나는 태연이보다 영찬이를 좋아했기때문에 태연이가 삐지기도 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덕기와 두영이 사이엔 이제 누가 더 친하고 이런건 별 의미가 없다
더와 덜이 아니라 다른것이니깐
덕기 같은 경우 내 삶에서 최초로 초월했다 할수 있다
극도로 서로 감정이 악화되었다가 그걸 뛰어넘어버린 것이다
최초지만 아마 마지막일꺼다…이제 누군가와 그런 감정이 된다면 아마 안 만남으로서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덕기에겐 미안한 것도 없고 어려운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고 감춘다고 감춰지지도 않는 사이가 되었다
두영이같은 경우는 덕기와의 애증과는 다르게 증이 없이 좋은 감정을 지속적으로 쌓아갔다
이것은 덕기와의 우정보다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고 다만 다른 것이다
그래서 덕기와는 다르게 비교적 각이 없다
덕기와의 대화에선 직설적이고 보다 실랄한데 두영이와의 대화에선 조금 완곡한 편이다
핵심을 집는 면에선 둘다 똑같지만 표현에서의 차이다
나는 두영이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좋은데 두영이도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좋다고 한다고 해서 신기했던 적이 있다
바로 바로 피드백이 필요한 대화엔 덕기가 좋고 호흡이 길고 이야기 자체가 중요할 땐 두영이가 좋다
암튼 동백섬의 시발점이 된 우리 셋이다
그리고 그만큼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별로 그렇지도 않다
동백섬의 역사와 위기 등은 다음에 시간되면 제대로 이야기 하기로 하고 여기서 이만

개강총회

Monday, September 8th, 2003

개강총회를 했다
왜 기억이 안나지–;
작년 1학기 개강총회가 오히려 더 생생하다
역시나 군대갔다 온 뒤부터는 기억을 못한다
오히려 군대가기 전이나 휴가나왔을때가 더 생생하다
치맨가–;

치기형 공연하다

Sunday, September 7th, 2003

치기형과 영해형이 공연을 한다구 해서 갔다
깐미씨와 점심때 만나 공나물 해장국 먹고 똥때리고 공연장으로 갔다
역시 영해영은 웃기다
그리고 치기형의 내츄럴함은 멋지다
간만에 진규가 연주하는 것도 보고 암튼 재밌었다
그리고 불어라 봄바람 봤다
내가 우겨서 봐서 좀 걱정했는데 예의상인지 재밌다고 했다

동그랑땡 4차 정모

Saturday, September 6th, 2003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간만에 권뽕이 왔었던게 기억난다
그리고 재한이가 제대한 기념으로 모인것이었고
범계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고진은 그날 못 와서 성웅이와 함께 권뽕차를 타고 고진네 집앞으로 찾아갔다
아 그때 길을 잘 몰라서 아줌마한테 물어봤는데 역시 고등학교때 ‘아줌마인기상’까지 수상한 최고의 아줌마 킬러 권뽕이 물어서 그런지 아줌마가 너무나도 친절하게 이제 그만 듣고 가고 싶은데 기다릴정도로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고진네 집앞에서 아이스크림 사먹고 담배도 피우며 간만에 고진과 이야기도 하고 재밌었다^^

잠실에서

Friday, September 5th, 2003

초등학교 친구 계형이가 휴가를 나와서 오랜만에 잠실에 갔다
언제나처럼 포근해지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계형이가 보쌈을 사줘서 먹고 한강에 갔다
맥주를 사고 쥐포를 구워서 둔치 계단에 앉았다
얼마전에 내린 폭우 때문에 한강은 계단의 반을 삼켜버렸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고등학교때 이야기 하는 것과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다른 나의 뿌리같은 이야기들…
정말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
계형이와 내가 항상 동의하는건 잠실의 아이들이 너무나도 착했다는것이다
그곳에선 모두들 바르게 자라서 난 안양같은 환경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전학와서 느낀 충격은 어린 나에겐 감당하기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애들에게 너무나도 서툴렀던 우리…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피어오르던 어설픈 사랑 느낌
뭉쳐 다니던 우리 사이에도 가끔씩 찾아오는 우정의 위기들
어린 시절에도 우린 우리들만의 세계에 충실했었다
세계의 균열은 나는 전학으로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 진학으로 생겨났다
우리세대는 최초의 장거리 뺑뺑이 세대이다
우리 선배때까진 잠신초등학교-잠신중학교-잠신고등학교는 대다수의 기본이었다
초등학교때 그래서 한반에 한두명있는 다른 중학교로 간 애들은 눈물을 흘렸고 중학교땐 정신여고같은 명문학교로 배정받는 소수는 기뻐하였다
그런데 우리 때부턴 아주 많은 학교로 나뉘게 되었다
아 우리에서 나는 전학갔기 때문에 제외이다
나는 비평준화 지역이었기 때문에 과천고에 시험봐서 골라갔다
어쨌든 친구들이 잠신 휘문 영동 현대 청담 등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접하는 색다른 환경은 그 이후의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어쨌든 우리들만의 상식이 깨어지고 다른 세계와 혼합된 아이들은 자기만의 스펙트럼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계형이를 만나면서 느낀점은 프리즘이 빚어내는 스펙트럼은 제각각이지만 빛은 하나라는 거다
누구도 새로운 사람이 되진 않았다 다만 많은 변화는 있었겠지만
계형이 역시도 많이도 변한 나에게서 낯선 느낌을 받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아이들 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하고 만나고 할만한 에너지가 아직 없다
계형이가 제대하면 계형이와 함께 옛 친구들을 찾아가야 겠다
그들은 또다른 즐거움으로 날 반기겠지

군대 따라가기의 역사

Monday, September 1st, 2003

내 친구중에 처음으로 군대에 간 녀석은 허진빵이다
그때가 99년 초…
우리들은 처음으로 군대를 보내는 거라 군대가는 친구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탁구를 쳤다
군대가는 친구를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건 탁구치는거 밖에 없었다
허진빵이 탁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땐 그게 재밌어서 쳤다
허진빵 군대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안양 일번가 나가서 놀았던 날도 기억난다
나는 좀 늦게 갔는데 그저 그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좀 짜증나는 분위기였던 거 같다
허진빵은 뭐하고 싶냐고 해도 별 말도 없고 아무거나 하자구 하구…
암튼 기억나는건 그래서 여관잡고 밤새 놀자고 해서 여관을 잡으려고 했다
암튼 아줌마와 협상하는 와중에 유치한 칼발 및 몇몇은 방문에 귀대고 안에서 무슨소리가 나지 않을까 열심히 들었던게 기억난다
암튼 여관방은 그냥 안가기루 하고 탁구를 쳤었나…이제 좀 가물가물하다
허진빵을 보낼때 하면 바로 탁구가 생각난다
그리고 허진빵 군대가기 전날 나와 몇몇은 허진빵네 집에 갔다
허진빵네 아버지께서 그때 우리 군대사에 남을 명언을 해주셨다
‘내일이면 진석이는 차가운 내무실 바닥에…’
암튼 이 대사는 유행어가 되었다
나는 진석이네 집에서 술을 마시며 열심히 가져갈것들을 찾았다
실용적인 건전지 등등의 물건을 챙겼다
그녀석 군대갈땐 따라 가진 않았다
다른 애들이 따라갔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허진빵은 전경이 되어버려서 동대문으로 면회오란 연락이 되었다
훈련소 끝나고 면회가 바로 된 것이다
그때도 역시 나는 가지 않았고 덕기 등이 갔었다
허진빵이 군대 간 일은 나에게도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건 내가 냉정하단 걸 결정적으로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항상 붙어다니던 친구가 군대에 갔지만 슬프거나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었다
조금 아쉬운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것마져도 감정보단 이성에 의한 판단이었다
냉정하다고 오해받던 두영이는 눈물까지 흘렸다.
그때 난 알았다 우리중에 가장 냉정한건 나라는거…부드럽고 정이 많은 듯 보이지만 나는 놀랍도록 차가운 사람이다
암튼 허진빵은 그렇게 가고 우리는 허진빵이 없는 와중에도 ‘지금 진석이는 차가운 내무실 바닥에 있을꺼야’라고 말하며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허진빵은 사실 너무 자주 나왔다
서울 시경으로 배정받아서 57분 교통 리포터랑 놀면서 공용이라고 나와서 집에 쉬다 가고 머리도 기르고…

두번째로 보낸건 상기다
99년 9월이다
그땐 나를 포함 대부분이 따라 갔다
완전 엠티 분위기였다 상기 역시도 그렇고 춘천가는 기차라서 아주 신이 났다
그날 같이 입대하는 도회도 같이 갔다
암튼 그렇게 신나게 갔고 들어가서도 대박이었다
102보충대에 가서 상기 연병장 나가구 우리는 보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반동 하면서 군가 부르는 게 있었다
사실 아주 숙연해지고 슬퍼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박상기 이녀석이 반동대신 그당시 유행하던 테크노로 반동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뒤집어 져버렸다
그리고 상기가 준돈으로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를 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춘천에서 닭갈비를 먹고 다시 기차를 타고 오는데
어떤 놈의 아이디어 인지 갑자기 상기네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뵙자고 했다
다들 정신이 없었는지 그러자~라고 해서 종열이가 상기네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상기네 부모님께선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아들 군대 보내서 심란한데
친구들이 갑자기 온다구 하니…
암튼 부모님이 다음에…라고 하셔서 우리끼리 시내에서 술을 마셨다
‘상기는 지금 차가운 내무실 바닥에…’라고 외치며 신나게 놀았다

그 다음이 종열이였다 종열이는 논산이다
그때가 99년 11월
역시나 즐겁게 가서 즐겁게 왔다
주된 관심사는 논산은 모가 맛있나 였다
암튼 그렇게 세번째 종열이를 보내고…
이 글을 종열이가 보기 때문에 더 적어야 겠다
다른 애들이 논산의 특산품 먹을 생각만 하고 있을때 나는 홀연히
종열이의 군생활을 걱정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세상이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종열이 없이 살아갈 세상이 너무나 힘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종열이가 군대 간 이후로 삼일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네번째가 바로 나다
나 군대가기 전엔 양평으로 놀러도 갔었다
상기가 100일휴가 나와서 극적으로 합류했던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길찾기 놀이랑 옆방의 중딩이랑 논거와 그로인해 아래층 남자애들이랑 시비 붙은거…모든게 덕기가 원인이다–;
그리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여행비디오촬영한거…
상기는 그때 얼마나 뽀글이가 먹고 싶었던지 뽀글이를 해먹었다
근데 나는 그때 별루 뽀글이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306보충대로 갔다…춘천 논산은 가봤으니까 종류별로 애들이 갈수 있도록….
암튼 의정부로 가기 때문에 지하철로 갈수 있는건 장점이었다
역시나 다들 신이 났고 나두 별 생각없이 재밌게 잘 갔다
점심에 짱께 먹구 물론 애들은 당연히 탕수육을 원해서 탕수육도 시키고…
그러구 나서 306으로 갔다
가는 길에 이곳 저곳 전화하구…
관례대로 애들에게 뒤풀이 비용–; 주고 두영이에게 따로 부탁을 했다
밀린 핸드폰비 7만원을 못 내고 왔으니깐 이것좀 내 달라고…
두영이의 눈빛이 반짝 하는걸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두영이는 자신만 믿으라고 했다
암튼 핸드폰은 현호에게 명의 이전해서 연체료 7만원만 내면 핸드폰과는 인연이 끝이었다
그런데 군대가있는데 집에 전화하면 어머니가 핸드폰 요금이 나온다고 어떻게 된 거냐고 하셨다…난 그럴리 없다고 했는데…
100일휴가 나가서 진실을 알았다
그 7만원 마져도 애들 입속으로 들어갔다
두영이 말로는 칼발이 제일 많이 먹었다 한다
암튼 고양이에게 생선배달을 시켜서 이꼴이 된거다

그리고 몇년후 두영이는 우리중에 마지막으로 02년 2월에 군대에 가게 되었다
물론 아직 제대를 하지 못해서 따라가진 못했다
하지만 어느날 허진빵 집에서 모자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두영이가 군대갈때 쓰고 간 모자라고 한다
나는 그럼 이건 내꺼라고 주장해서 허진빵에게 그 모자를 빼앗아 왔다
그게 내가 애용하는 내 7만원짜리 모자다
신기한건 그 7만원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다는 거다
7만원이라면 그당시의 나에겐 엄청나게 큰돈이었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우정이 잊게 만드는 돈의 최대치는 얼마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난 7만원 이상이다

필기 군대 따라가기

Monday, September 1st, 2003

깐돌이가 드디어 군대를 갔다
나는 00년 1월 특차로 바루 가고 경호는 00년 4월에 추가합격으로 간 군대를 깐돌이는 03년 9월에야 갔다
2학기 수시모집으로 간 것이다
암튼 그덕에 8월말은 우리집보다 깐돌이네 집에서 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깐돌이랑 놀았다
이녀석이 군대가려니 맘 약해졌는지 갈구지도 않구 삐딱하게 굴지도 않고 착해졌다
9월 1일날 논산으로 입대지만 난 안가기루 했다
왜냐면 계속되는 수강신청의 실패로 9월 1일날은 2학기의 수강신청이 걸린 중대한 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름데루 고민은 해봤지만 가고 수강신청 망하면 한학기를 망칠수도 있기 때문에 안가는게 나을거 같았다
게다가 필기 부모님과 형이 가신다고 해서 내가 가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필기 약올리기만 할테니 사실 별루 도움이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암튼 마지막 추가신청에서 고배를 마신후엔 안가는걸로 잠정결론 지었다

< 여기서 잠깐>
김석호식 싸가지없게 말하기 강의가 있겠다
나의 상황상 일반적이고 사회에서 왕따 안당하기 위한 대화법은
‘가고 싶지만 수강신청을 못하는 바람에 못간다’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못가’가 아니라 ‘안가’다
못가는 말그대로 불가항력이다
졸라게 못가는 상황이다 선택마져 할수 없는 그런 상황
예를 들자면 하늘의 별은 안따는게 아니라 못따는거다
하늘의 별이 무슨 배때기도 아니구 따고 싶다고 따나…
대부분의 못하는 상황은 안하는거다
자신이 결정하는 거니깐…
여자친구때문에 친구한테 못가는 것도 가치관에 의한 선택에 따라
친구때문에 여자친구한테 못가는 상황이 될수도 있다
암튼 끝으로 주의점은 이런식의 말하기는 상대 혹은 다른 듣는 사람에게 ‘재수없다’는 감정과 싸가지없다는 느낌을 주므로 되도록이면 사용안하는 편이 낫다

필기는 늦게까지 잠을 못이루는 듯 싶었다
메신져에서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들어오구 해서 이야기좀 하다가 필기는 자구 나는 자면 아침에 못 일어날게 뻔해서 잠을 안자구 계속 있었다
새벽에 학교로 가서 교수님 강의실앞에 붙어있는 선착순 추가신청의 상위권에 이름을 적고 필기를 보러 영등포역으로 갔다
갔더니만 필기 어머니와 형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나마 아무도 안가는 줄 알았다
근데 고등학교 친구들은 같이 가는게 아니라 마중 나온거란다
게다가 표를 사기루 했다는 의혁이 놈은 연락도 안되고 운기형도 늦을꺼 같다고 한다
표를 사는데 그냥 내꺼까지 사기루 했다
난 원래 우유부단해서 결정도 쉽게 못하고 한번 결정한 것두 잘 바꾼다
의혁이놈은 결국 안나타나고 운기형은 와서 필기 어머니와 형 나 운기형이 같이 가게 되었다
의혁이놈은 기차타려고 할때야 도착했다고 해서 그냥 즐~ 했다
기차를 탔는데 자리가 두자리와 세자리가 떨어졌다
필기와 어머니 형을 앉게 하려구 했는데 필기 어머니가 나랑 운기형이랑 같이 앉으라 해서 필기 나 운기형이 같이 앉구 어머니와 형은 떨어져서 앉게 되었다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였다 나와 운기형은 필기를 놀렸다
필기 놀리기는 정말 재밌다
암튼 난 그와중에 틈틈히 전화로 내 대신 수강신청 해줄 애들을 수배했다
그래서 그럭저럭 전공은 했구 컴공과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미 떠난몸 별로 걱정할 건 없고 컴공과꺼는 봐서 어떻게든 하면 될꺼라 생각했다
논산역에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훈련소로 갔다
그 앞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필기덕에 맛있는거 먹어서 좋았다
그리고 훈련소로 들어갔다
필기는 나와 운기형이 최후의 식후땡을 권했지만 안 피웠다
들어가서 졸라 후회할꺼면서…
나중에 필기가 연병장으로 나가고 우리는 남아서 구경했다
아 예비역으로 구경하는게 이렇게 편하구나
예비역이라는게 뿌듯했다 조교 후까시 졸라 잡고 있어두 무서울것 없고
친구따라온 다른 고만고만한 놈들보다 우위에 있는 나는야 예비역 병장이었던 것이다
행사 중간에 필기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셨다
처음으로 보내는 아이라 걱정과 아쉬움이 크실 것이다…
암튼 행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짱박아 온 물건 부모님에게 돌려주기 시간이 있었다
근데 깐돌이가 안 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려구 다들 오는데 깐돌이는 안온다
운기형이 부를려구 들어갔는데 됐다구 했다구 한다
역시 끝까지 깐돌이다
암튼 깐돌이를 들여보내고 운기형은 근처에 친구 있어서 만나러 간다는게 낼 수업까지 제낄라나 보다
필기 어머니가 오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깐돌이의 어렸을 적 등등의 깐돌이 이야기…
난 깐돌이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입열면 깐돌이 다친다
암튼 깐돌이는 집에서 후까시 잡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걸 두달 반이나 지나서 쓰자니 거의 까먹었다
역시 일기는 꼬박꼬박 써야 한다
그리고 특별 부록…군대 따라가기의 역사가 뒤이어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