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2004

안톤 우유

Wednesday, July 28th, 2004

아르바이트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열심히 네이버 뉴스도 보고 싸이도 하고 홈페이지도 보고 하다가
순간 배가 고픈 느낌에 우유와 바나나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
잘 알다시피 바나나를 한입 베어물고 우유를 입안에 부어서
오물오물 잘 섞으면 바나나 우유가 된다
물론 초코파이를 씹다가 우유를 마시면 초코우유가 된다
우유를 바닥에 내려놓고 소파에 기대면서 바나나를 까고 있는데
우유가 지혼자 자빠졌다
단언컨데 난 우유 건드린적 없다 지혼자 그런거다
정말 황당했다
우유의 어이없는 헐리우드 액션에 마루가 우유바닥이 되어 버렸다
오노의 헐리우드액션에 금메달을 뺏긴 김동성의 마음이 이랬을까
정말 분하다 그렇지않아두 귀찮은거 싫어하구 또 피곤해서
몸 움직이기도 싫은데 걸레빨아 와서 바닥을 딱으려니 우유가 너무 미웠다
정말 김동성처럼 연예계로 진출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연예계로 진출하면 나의 섹시카리스마에 뭇 여성들이
잠못들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에 참았다
지금 보니 생긴것도 딱 오노다
E-PLUS 우유라고 써있지만 실은 매일우유다
메밀우유면 특이하기라두 하지 3.4우유랑 똑같은 주제에…
3.4하니까 학점같아서 또 가슴이 저며온다
암튼 생김새는 일본놈에 국적은 미국인 오노와 다를바 없다
하긴 내가 이런말 해봤자 내가 미쳤다구 생각하겠지만
정말 난 우유 안 건드렸다 정말이다!!!

머 그냥

Tuesday, July 27th, 2004

홈페이지의 인기가 조금씩 다시 상승하구 있다
다시금 민지의 자주가는 홈페이지에 선정되었구
동그랑땡에서 혜림이도 오구…
어… 생각해보니 그게 끝인거 같지만 암튼
아 치기형도 돌아왔다 ㅋㅋ
종열이는 레벨 1 만들고 튀더니 다신 안오는 듯 싶다
그녀석은 내 홈페이지보단 레벨 올리기에만 관심이 있었던 거 같다–;

원래 방학때 계획했던 이벤트가 두개 있긴 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바빠서 아직 추진은 못하고 있지만…
그리고 일기거리 생각해 논건 또 안쓰다 보니 다시 까먹구 있구
예전부터 구상하던 연재소설은 아마도 역시나 빛을 보지 못할 것 같다
하긴 늘 난 생각만 하구 하지는 않는다 ㅋㅋ
홈페이지도 세번째 홈으로 개편해 볼까 하지만 일 크게 벌여서 좋을게 없을듯 싶어 그건 그냥 관두련다
몇가지 새 메뉴를 만들까 했는데 일단 있는거 가지고부터 잘 하구 나중에 개편할 생각이다

그러고보니 방학도 이제 한달 남짓 남았는데 한것두 없이 지났다
시간 낭비도 심하고 몸도 막 굴리고 있고 머하나 정리된게 없는듯…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해보자…

애들을 만났다

Monday, July 19th, 2004

금요일과 토요일에 오랜만에 동백섬 애들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왜냐면 아르바이트 끝나고 갔기 때문에 12시가 넘어서 만났기 때문이다
금요일엔 두영와 덕기 그리고 지연이를 만났다
두영이 녀석이 훌륭해진 덕분이다
전에 두영이가 너무 보구 싶어 전화했는데 두영이 녀석이 돈이 없어서
나중에 두영이가 훌륭해져서 돈 많이 벌면 만나기로 했었다
너무 너무 두영이가 보고 싶었지만 두영이가 훌륭해질때까지 참고 또 참았다
그 인내 덕에 훌륭해진 두영이를 만날수 있었다
내가 갔을때 덕기는 벌써 취해 있었다
븅신같은 넘이 졸리다며 지연이한테 기대서 자다가 일어나다를 반복해서 사람 정신없게 만들었다
덕기두 오랜만이지만 지연이는 더 오랜만이었다
지연이는 정말 착한거 같다 덕기같은 놈을 아직도 만나구 있으니..
덕기가 예전에 칼발이 나 감염 보균자라고 퍼뜨리던 이야기를 해줬다
칼발 씹새끼
칼발은 지금 호주에 가있다
호주에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홈스테이하는 호주인들은 물론이고
이제 캥거루까지도 한국말을 할 지경이란다
난 칼발이 한국말을 제대루 배워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꽈자를 떤지라는 등 이상한 발음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요일엔 두영이와 상기 재홍이 태식이 현호를 만났다
현호는 지가 술먹자구 했다는데 나 오구 좀 있다 젤 먼저 들어갔다
이상한 놈이다
나머지 애들은 술좀 먹다가 겜방을 가기루 했다
근데 술먹고 남은 돈을 다 모아봤더니 8000원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0원으로 담배 사고 6000원으로 5명이 한시간 게임을 하기로 했다
근데 어차피 집에도 못가구 하니까 술을 더 먹자구 했다
그래서 허진빵을 부르기로 했다
근데 허진빵이 짜증나게 안나온다구 한다
그래서 최근에 날로 먹고 간 종열이에게 신진빵의 칭호를 붙이고
허진빵은 개새끼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다
일단 남은 동전 다 털어서 펀치를 좀 하구 편의점에서 맥주피티랑 새우깡을 사서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았다
졸라 아껴 먹구 아껴 폈는데두 담배도 술도 오링났다
사실 나랑 재홍이랑 따시기는 집에 걸어 갈수 있는데 두영이랑 상기 때문에 집에도 못가구 배회하다가 도회를 부르기로 했다
그러구 겜방에 갔다
도회가 와서 우리는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덕에 도회는 토익 접수비를 써버려서 토익을 못보게 되었다
좀 미안하구 졸라 고맙다 도회야

아르바이트

Sunday, July 18th, 2004

오랜만에 일을 하고 있다
랩실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느라 한참동안 아르바이트를 안했었는데
랩실도 관뒀고 돈도 벌어야 하고 이제 노는것도 좀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첨에 민지랑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민지 일하는 데서 같이 일하자고 했었다
민지는 여자가 많다는 걸 강조해서 내가 그만 거기에 넘어갔다
물론 뻥이다..정말 뻥이다
하이카라야 라고 인사동에 있는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인데 일본의 유명한 체인점인가 보다
사실 유명한지 안 유명한진 일본에 안가봐서 모르겠다
암튼 일본회사의 지점이다
어떤식으로 운영되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직영인지 프랜차이즈인지 모르겠다는거다
지점장이 좀 젊은걸로 봐서 직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에 보니 전화하는데 일본어로 쏼라쏼라 하던데..
(지점장이 이 글을 볼 일이 없으니까 존칭은 생략이다..
나한테 욕 안먹을라면 내 홈페이지를 애용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주방에서 일하는데 튀김과 꼬치를 하구 있다
주방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다
사실 나는 요리하는 걸 귀찮아 한다
요리하는걸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요리는 대개 귀찮다
게다가 집중해야 하니까 딴 생각도 못하고..(라면만 해도 집중안하면
냄비 태우거나 라면 엄청 뿔리기 쉽상이다)
그래서 이 일기에 잘 찾아보면 있겠지만 김석호 스타일의 김치볶음밥엔
김치를 자르지 않고 넣는다
김치 잘게 자르는 귀찮음을 덜어버린 웰빙형 김치볶음밥이라 할수 있다
이야기가 자꾸 딴데루 새는데 역시나 일은 상당히 귀찮다
아날로그적인 일일 수록 귀찮음은 증가하는데(물론 센스가 있을수록
아날로그적인 일에 강할 것이다)
빌어먹을 요리법은 소림사 스타일이다–;
적당한 양을 적당한 양념을 해서 적당히 튀기거나 굽는거다
머 어느정도 표준은 정해져 있지만(전자렌지 돌리는 시간이나
새우튀김같은 개수를 정확히 셀수 있는것들은)
그래도 대부분은 경험과 눈대중으로 해야 하고 튀김시간은 안정해지고
익을때까지기 때문에 여러모로 귀찮다
머 나름데로 아르바이트는 해볼만큼 해봤고 아르바이트로 멀 배울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칼질하는거나 야채 다듬고 튀기고 하는건
배울 수 있을꺼 같다
사람들은 모두 좋아서 다행이다 ㅋㅋ
이번 알바 컨셉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남자이다
말을 줄이고 농담도 잘 안하고 미소짓기로 일관하고 있다
전에 주공공이 시절의 컨셉은 내가 03학번과 잘 놀수 있나 테스트였다
대부분의 스텦들이 예비03이었기때문에 예비03들에 대한 말장난 반응
실험과 03학번에 대한 적응으로 새벽 03학번 30명 받기 프로젝트의
예행 연습이었다 할 수 있겠다
요즘도 장난기가 좀 발동하기도 하지만 컨셉상 그리구 탐색상 참구 있다

음 요식업에 있다보니 나름데로 요식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역시 대형 체인은 별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이카라야 역시 맛있는 집으로 인정받고 손님들의 맛에 대한 평가도
후하긴 하지만 내가 만든 튀김이 과연 분식집 튀김보다 맛있을까
나는 음식 만드는 건 문외한에 가깝고 분식집 아주머니는 그래도
튀김만 30년이다…
주방장님이 계시긴 하지만 대부분의 요리는 아르바이트생에 의해
만들어 지기 때문에 주방장님의 손맛이 개입할 여지는 거진 없다
물론 주방장님에게 배운 방법으로 조리하고 또 재료나 소스가 주방장님의
감독하에 만들어 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우노에서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도 결국 인스턴트지 않은가…
표준화된 재료를 아르바이트생이 표준 조리법으로 만들어 나오는데
그렇다면 같은 재료를 공급받아서 내가 만들어도 같은 맛이 날 것이다
사실 체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표준화이긴 하다
언젠가 케이비에스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요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요리체인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나왔는데
실패 원인중의 하나가 표준화 실패이다
우리나라 요리법 자체가 두리뭉실해서(예를 들면 소금 약간 머 이런식)
체인간의 표준화가 안된다는 점..
또 말이 장황해 지는데 이곳 같은 경우 느낀 점은 표준화가
좀 안 되어있다는 거다
매뉴얼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있긴 있을 거 같다)
직원들이 보는 레시피 없이 말을 통해 요리법이 전수된다
튀김같은 경우 정확한 시간을 튀겨야 할거 같은데(KFC 치킨처럼)
그런게 없다.. 물론 이론적인 거구 실제적으로 시간 재가며 튀길
여유는 없지만..
원래 하려던 말은 주방장이 직접 하는 조그만 가게가 더 맛있을 거라는
것과 아니면 체인같은 경우는 표준화가 철저히 되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체인같은 경우 요리사의 재능과 상관없이 원래 맛있어야 한다는 거다
패미리 레스토랑 음식들이야 원래 맛있는 음식이니까
그리고 피자헛의 피자는 어디서 시키든 그 맛 그대로니까
하이카라야 음식이 그래도 후한 평을 받는 건 음식 자체의 양념과 조리법이
좋은 덕인 거 같다.. 내가 만든거 내가 먹어도 맛있는 걸 보면 ㅋㅋ

폭우

Tuesday, July 6th, 2004

조금 걷는것만으로도 흠뻠 젖어버리고 마는 폭우…
세찬 폭우속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게는 기원전이라 할수 있는.. 이어진 하나의 흐름이 되지 못하고
잘게 나뉘어 단편으로만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내 기억의 체계가 잡힌 잠실 이전에 나는 봉천동과 신림동을 전전하며 살았다
‘전전’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내 의지가 조금도 들어가지 못한
부모님의 가난이 우리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불행의 기억은 아니다
다만 잦은 이사로 기억이 조각나고 그 당시 친구의 이름하나 남기지 못했지만
그건 불행이 아니라 단지 유감이라고나 할까

내가 태어난 곳은 연희동이다
아주 어렸을 적에 살아서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지만
오랜 후에 모래네시장이란 말을 들었을때 낯설지 않았던 것은
그래도 조금은 내 어딘가에 흔적처럼 남아있었나 보다
우리 어머니가 그때 연세대로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가는 학생들을 보며
연대생이 이렇게 많은데 커서 이 안에 못들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작은 기억이나마 떠올릴 수 있는건 봉천동과 신림동이다
집도 기억나고 어렸을적의 일도 떠오른다
그런데 살았던 집도 너무 많아서 어느 것이 먼저였는데 짜맟추지는 못한다

최초에 나를 이끈 기억은 언덕길이다
폭우로 인해 언덕길을 타고 미친듯이 흘러내리는 빗물의 강을 보자니
신림동 집 앞의 언덕길이 떠올랐다
그당시 인기티비프로인던 ‘한지붕 세가족’과는 다르지만 한집에 세집이
같이 살았는데 주인집은 자가용(그 당시엔 승용차가 아닌 자가용이었다)
까지 가지고 있는 부자집이었고 우리집과 다른 한집이 세를 들어 살았다
주인집엔 우리형보다 한살인가가 많은 형과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누나가 있었고 우리 말고 세들어 사는 집엔 혜정인가 하는 아주 어린
꼬마 여자애가 살았다
심심하면 혜정이네 집에도 놀러 갔는데 별로 할것도 없었던 것 같다
말동무가 되지도 못할 정도로 어린애였으니까 그냥 애기보는 기분으로
놀았던 거 같다
애틋한 로맨스는 전혀 기대도 못할 만큼 조그만 어린애였다고 적을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봤자 나이차는 얼마 안 났던거 같다
내가 7살이라고 해도 한 3살이나 4살이었을 테니 지금은 대학다니겠다

그때도 비가 많이 내리면 집앞의 길로 빗물이 성나게 흘렀다
엄마 쓰레빠를 신고 일부러 발로 그 줄기를 자르고 서 있었던 기억도 있고
그 빗물이 흘러드는 하천에서 발을 담그고 놀았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아마도 복개되어 그 위로 도로가 생긴거 같은데
지저분한 물이라서 선생님들이 파상풍 걸린다고 협박을 했다
녹슨 못을 밟으면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잔뜩 겁을 줬지만
그 지저분한 물에라도 발을 뺄수 없던 없던 어린시절이다

아랫 골목에는 슈퍼가 있었다
그당시 어머니는 집에서 부업을 하셨는데 옆에서 100원만 하며 졸라서
100원을 받으면 그 슈퍼로 갔다
나는 우유부단하다..그리고 기회비용에 대한 아쉬움이 크고
그래서 늘 결정이 늦고 신중하다
가난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부자였다면 난 경솔했을것이다
100원을 가지고 슈퍼에 가면 한참동안을 골랐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이걸 먹으면 후회할거 같고…
그래서 난 질보다 양을 추구했다
맛에 대한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택한 방식은 계량화된
양을 보고 고르는 것이다
내가 주로 사먹던 건 ‘노을’이란 빵이다
아마도 내 기억엔 80g이었던 거 같은데 빵중에서 최고의 질량을
자랑하는 큰 빵에 위에 소보루가 조금 얹어져 있었다

위 골목엔 친구가 살았다
이름도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꽤 친했었다
예의바른 아이라서 우리 부모님도 좋아했다
나역시 예의바른 아이라 친구의 부모님 역시 날 좋아했다
뭐하고 놀았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아마도 계몽주의에서 야기된 프랑스혁명 이후 발생한 낙관적 공리주의에
대한 회의가 후기 인상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같은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는 아주 쉬운 주제로 이야기를 하며 놀았을 것이다

언덕 너머엔 시장이 있었다
엄마랑 같이 시장에 자주 갔었는데 김장을 앞둔 늦가을
엄마는 징징거리는 나를 그냥 두고 배추만 들고 집에 오셨다
그날 내가 집에 와서 소리쳤던 ‘엄마, 내가 중요해요 배추가 중요해요’
는 아직도 어른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골목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언덕 너머엔 다른 언덕이 있듯
작은 기억으로부터 이어진 기억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끊임없이 불러온다
끝없는 길에서도 어딘가에선 쉬어야 하듯
오늘은 여기까지만…

다시 일기를 써볼까

Sunday, July 4th, 2004

방명록에 글이 없는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그동안 안썼다
는 구라고 관성이라는게 있어 한번 쓰기 시작하면 계속 써지지만
마찬가지로 한번 안쓰기 시작하면 또 그게 한없는 지라…
6월 7일 이후론 내가 무얼 했더라
기말고사 프로젝트 등등에 동백섬 애들도 만나구
동그랑땡 애들도 만나구 새벽 종강총회도 하구
그러다 계절학기도 하구 계절학기 기간엔 국자네 방서 자취하구
이제 계절학기는 일주일 남았고 내 병은 다 나았고
수영이를 포섭해서 깐길드에 가입시켰고(늘어가는 워크 인구^^)
하지만 깐길드 대 활빈당의 워크 2 대 2 및 3 대 3 모두 져서
깐길드의 명예는 바닥에 추락했고 그 와중에 나는 스타를 슬금슬금
하고있고 어제의 피토배 스타대회는 역시나 일준이형이 우승했고
국자네 집은 심심하기가 그지없어 심심찮게 심심함을 느끼고
그덕에 애꿎은 싸이만 졸라 하게 되고 유로 2004 안보겠다고 해놓구
아직도 보구 있고 여전히 늦게 자고 있다
권뽕 본지가 오래 되서 권뽕이 보고싶다…
계형이 알바비 다 쓰기 전에 계형이두 한번 봐야는데…
싸이질두 이제 그만 해야지 시간 아깝다
이제 7월이다…
정신없던 2004년의 6달이 지나가고 나머지 반이 남았다
먼가.. 먼가가 필요하다